결혼 전 개인적으로 자녀는 최소 4명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아이가 한 명이면 자라는 동안 아이 혼자서 외로울 것이고 나중에 경조사를 챙길 때 의지할 형제자매가 없어 심리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아무래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부모의 관심과 기대가 오직 아이 한 명에게만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관심이 높으면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부모나 아이 모두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두 명이면 첫째 입장에서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받았던 부모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동생을 한없이 미워할 것 같았습니다. 혹자는 동생이 생기는 것에 대한 첫째가 받는 정신적인 충격은 함께 잘 살고 있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첩을 집에 데리고 들어왔을 때 받는 아내의 충격과 비슷한 것이라고 얘기할 만큼 큰 충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세 명이면 첫째가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그로 인해 이유 없이 둘째를 미워했던 마음은 셋째가 태어남으로써 가족이 늘어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둘째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형제자매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사회성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에 첫째와 셋째 사이에 있는 둘째는 눈치만 보다 정작 둘째가 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못 할 것 같았고 세 명 중 한 명은 따돌림을 받을 수 있는 등 안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최소 4명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어떠한 이론적 배경이나 과학적인 근거 없이,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제자매들간의 관계만을 고려할 때 적절한 자녀 수는 최소 4명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신체적, 경제적, 환경적 요소 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 경제적, 환경적 요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요소들도 시대에 따라 다르며 무엇보다 부모들 각자 생각이나 상황이 달라 몇 명의 자녀를 두는 것이 적당한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가족 계획을 수립할 때 신체적, 경제적, 환경적 요소들과 함께 아이들 간의 관계도 함께 고려 대상에 넣어서 고민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 한 명 키울 때 얼마의 비용이 든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명, 세 명 키울 때 보통 얼마의 비용이 든다는 기사는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저출산으로 다둥이가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그래도 ‘아이 한 명 당’이라는 표현을 써서 마치 두 명 키울 때 한 명 키우는 비용의 2배가 드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첫째 때 산 물건들 중 상당수는 둘째가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첫째가 배울 때 둘째도 옆에서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몇 명 나아 키울 지는 결국 부모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첫째가 되었건 둘째가 되었건 아니면 그 이상이 되었건 아이를 낳고 싶은 의지는 있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여러 가지로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아이가 하나일 때와 아이가 둘 이상일 때 역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몇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명이 되었건 각각의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우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다섯 손가락 중에 깨물면 아파도 되는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자식들 중에 대충 키워도 되는 아이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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