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첫째가 갑자기 말을 시작했습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피가 나왔다."
저는 약간 놀란 말투로 "생리했나 보네..."하고 아내를 쳐다보았습니다.
순간 저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아이고 불쌍해라"라고 하며 첫째를 봤습니다.
그러자 첫째는 엄마의 소리에 놀랐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뭔가 크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순간 저는 예전에 '첫 사정한 아들에게 파티를 해 준 한 엄마에 대한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축하해! 이제 드디어 성인이 되었구나~. 울지마~. 기뻐할 일인데 왜 울어! 울지마~."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옆에서 아내는 "아이고 불쌍해라. 아무도 안 챙겨줘서 몰랐구나."라고 첫째를 위로해 줬습니다. 아마도 아내는 자신이 미리 알려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모양입니다.
그랬습니다. 첫째는 생애 처음으로 생리를 했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저희 때 같으면 중학생이 될 수도 있었던 동기보다 생일이 빠른 아이입니다.
보통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보건 선생님으로부터 성교육을 받는다고 하는데 작년에는 코로나로 교육을 못 받아서 몰랐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나: "케익이라도 사서 축하해 줘야지."
아내: "그러던지. 아빠가 쏘나?"
나: "그래. 아빠가 쏜다!"
첫째는 많이 놀랐는지 쉬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풀어지긴 한 것 같습니다.
옆에서 첫째와 연년생인 둘째는 계속 "무슨 일인데." "뭔데"만 연신 말하고 있었습니다.
막내 때문에 제대로 얘기 못하는 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말입니다.
자기 말에 계속 대답하지 않으면 또 짜증을 낼 기세였습니다.
이제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아님 아내도 느꼈는지 아내는 "엄마가 나중에 너희 둘에게는 얘기해 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아내가 생리대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두 딸들을 불러 교육을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첫째도 자신에게 생긴 몸의 변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양입니다.
둘째는 엄마에게 교육받은 후 저에게 와서 "엄마가 나도 1년 뒤에는 언니처럼 할 수 있데"라고 말하며 갑자기 울면서 "그런데 돈 없는 사람들은 운동화 깔창으로 한데 불쌍하지 이이이..."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들 보면 불쌍하다고 우는 마음씨 착한 우리 둘째입니다.
둘째는 언니가 있으니 최소한 언니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계획대로라면 제가 케이크를 사야하는데, 둘째가 직접 케익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평소 첫째가 유튜브를 보며 케이크도 만들고, 머랭 쿠키도 만들고, 마카롱도 만들었는데, 둘째도 언니가 만들 때 많이 보고 배운 모양입니다.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는 사이 둘째는 막내와 케이크를 만들어서 우리는 첫째의 첫 생리를 기념했습니다.
아쉽게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기에 이렇게 글이라도 남깁니다.
가끔 아이들과 소리 지르며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먼저 와서 솔직하게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사춘기인 (아니면 벌써 사춘기 인지도 모르는) 아이들. 지금처럼 앞으로도 저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민을 털어 놓는다고 그 고민을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내라도 말이죠.
아참, 혹시라도 올해 초등학교 5, 6학년 또는 중학생 자녀들 둔 부모가 이 글을 읽는다면, 학교에서 여러 사정 상 성교육을 못 해 줄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교육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글:
2020.08.23 - [아빠의 육아] - 아이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92004259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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