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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장이란?

by 까삼스 이삐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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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화초장(花草欌)이나 자개장 같은 장롱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정의된 화각장(華角匠)은 쇠뿔을 얇게 펴서 채색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목물 위에 붙여 장식하는 각질 공예에 종사하는 장인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화각장은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화각장)

 

화각공예는 고려시대의 나전칠기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예로 한국공예의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주는 공예 기법입니다. 화각공예 기술의 연원은 원래 중국 당나라 시대부터 있었던 대모복채(玳瑁伏彩) 장식에서 기인합니다. 대모복채는 바다 거북이의 등딱지를 얇고 투명하게 갈아서 안쪽에 채색하여 목공예품의 표면에 붙여 장식한 기법입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조선시대 화각의 종류는 대부분 여성용 가구와 소품들로 머릿장, 버선장, 소형함, 경대, 반짇고리, 참빗, 바느질자, 실패, 장도, 베갯모 등이 있습니다. 화각은 수십 차례의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힘들게 제작되지만 들인 공과 정성에 비해 실용성이 적은 결점이 있습니다. 재료가 귀하여 구하기 어렵고 뿔 자체가 풍화되거나 부스러지기도 하는 등 튼튼하지 못하고 보존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주로 특수 귀족층들의 기호품이나 애장품에 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경공장이나 외공장에 화각장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기록으로는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 : 1759∼1824)의 『규합총서 閨閤叢書』「동국팔도소산」 중 「전주 화각기」가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한 예입니다.

 

 

 

화각공예는 조선 18·19세기경 성행하였고 1920년대 초부터 쇠퇴하여 1930년대 중반기에는 거의 생산이 중단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일원인 양화진(楊花津)부근에는 1900년대 초까지 화각장 공방 약 60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양화진 공방은 조선 말기 궁중 용품을 주문받아 화각 머릿장, 화각 이층장, 왕실의 행사에 사용할 화각함 등을 제작해 납품했던 최고의 기술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대 이후 점차 쇠락하기 시작하였으며 1924년 대홍수의 피해로 마을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합니다.

 

화각공예가 20세기 초에 급격하게 쇠락한 이유는 가격이 저렴한 셀룰로이드로 만든 모방품에 밀려서 입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국내로 들어온 일본인 사업가들은 까다롭고 제작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쇠뿔 대신 공정이 쉽고 빠른 셀룰로이드판을 공급하여 가짜 화각을 만들어 대량 유통시켰습니다. 화각공예는 모방품과의 가격경쟁에서 뒤지면서 제작기술이 퇴락하게 되었고 모방품인 참빗, 부채, 실패, 자 등이 전국의 시장에 대량 유통되면서 1930년대에는 화각기술이 거의 단절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화각기술이 지금까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말기부터 3대째 각질장(角質匠) 겸 대모공장(玳瑁工匠)으로 활동한 고 음일천(1903-1974) 선생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1920년대부터 화각공예 기술에 대한 조사 연구와 화각공예품 제작에 전념하여 1970년대 초까지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그의 제자인 이재만 선생이 유일하게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그 기술이 보존 및 전승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youtu.be/OrSsrEbTUJo

 

 

이재만 선생은 어린 시절 큰 화상을 입어 대다수 손가락이 끝 마디 또는 둘째 마디까지 손실되어 온전한 손가락이 몇 남지 않았지만 열여섯 살 때 음일천 선생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개인 작업을 하고 교육활동에도 힘쓴 결과 장애를 극복하고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의 최초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현재까지 전승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화각장 보유자로는 경기도의 무형문화재 경기29호 화각장이었던 고 한춘섭(1949-2015) 선생이 있었을 뿐입니다. 한춘섭 선생은 나전칠기에 입문하여 기술을 익힌 뒤 음일천 선생의 문하에서 다시 화각기술을 배웠습니다. 현재는 그의 아들 한기덕 선생이 무형문화재 경기29호 화각장 전수조교로 지정되어 기능 전승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화각장

한국문화원연합회 소의 뿔로 만든 화각공예 장인 화각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9)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한춘섭 화각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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